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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나라]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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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나라 표지
“어이, 김 씨! 그것 좀 가지고 와!”

“예, 예!”

자꾸만 무거워지는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반장이 가지고 오라는 철재 발판을 들고 옮기는 김 씨는 중년 남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실한 기업의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IMF의 높다란 파도는 김 씨가 평생을 몸 바치려고 했던 기업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김 씨의 잘못이라면 우직하니 일만 했던 것뿐이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덜컥 회사가 망해서는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러고 나니 김 씨에게 남은 것은 한숨 쉬는 마누라와 아직 철모르는 아이들뿐이었다.

회사가 망했으니 퇴직금은 고사하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에 돈줄이 끊겨 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었다.

아이들 교육비 말고도 돈 들 것은 많았다. 마이카니 아파트니, 한창 TV에서 홍보되며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었다. 모든 국민이 차와 아파트를 갖고자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큰돈이 필요했다. 당연히 뻔한 월급으로는 한 번에 살 수 없었다.

결국 은행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건실한 기업의 직장인도 아니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은행이 돈을 빌려줄 리 없었다.

당장 은행들조차도 살기 위해서 대출금을 무자비하게 회수하기 바빴다.

김 씨도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는 독촉장에 사정을 해 보았지만 금리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리든지 아니면 집을 가압류 하겠다는 말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김 씨뿐 아니라 수많은 가장들이 그런 식으로 길거리에 나앉아야만 했다.

처음 결혼할 때 시작한 셋방살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수많은 가정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IMF는 경제력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 자체를 엉망으로 흔들어 놓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니 사회 자체가 이기적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기업들이 무너지고 실업자들이 생겼을 뿐 아니라 가정폭력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원래부터 대한민국이 꽤나 가부장적인 사회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 IMF로 인해 가정경제력이 무너진 뒤 권위를 잃은 가장들이 그 분노와 무력감을 가정에 쏟기 시작한 것이다.

김 씨도 가정을 지키기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린 자식들을 고향의 할아버지에게 보내고 아내는 식당을 전전하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서 식사 한 번 할 수 없게 됐다. 여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때 김 씨에게 기회라면 기회가 찾아왔다.

“하는 일은 막노동이긴 하지만 건설사 정규직이고 사대 보험 적용됩니다. 주 6일 근무에 토요일은 오후 2시 퇴근이고 자식들이 있으면 학자금 지원에, 살 곳이 없으면 나중에 해당 아파트가 완공되면 제 2순위로 입주할 수 있는 혜택이 제공됩니다. 비정규직으로 하실 거면 정규직보다 20% 정도 임금이 더 제공되지만 다른 혜택이 없으니까 되도록 정규직으로 하세요. 나중에 퇴직하면 퇴직금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막노동은 평생 해 본 적도 없고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고민을 할 수도, 그럴 여력도 없는 김 씨는 한 건설사의 정규직 근로자가 되었다.

김 씨뿐만 아니라 수많은 근로자들이 그렇게 정규직 막노동꾼이 되었다.

월급은 그 전보다는 작아졌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자 김 씨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수입이 안정되자 은행에서 대출을 연장해 주겠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김 씨는 가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몸이 고되기는 하지만 다시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아파트 얼마에 분양 된답니까?”

김 씨는 잠시 쉬는 와중에 높다랗게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현장 관리자에게 물었다.

“아! 여기요. 여기 임대 아파트입니다. 우리 건설사는 분양 아파트 안 지어요. 분양한다고 분양 받을 만한 사람도 많지도 않고. 하여튼 여기 24평형 아파트가 아마 보증금 1000에 월세 15만 원인가 20만 원인가 할 겁니다.”

“예? 아이고! 그렇게 싸요?”

김 씨는 현장 관리자가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IMF로 인해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지만 주변의 아파트 시세가 평당 250만 원가량 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2억 3천이 넘던 은마 아파트가 1억 5천으로 폭락하고 서울의 50평 대 아파트가 1억 2천으로 폭락하던 시기였다.

지방의 아파트들 중 대부분은 1억은커녕 5천 대에 팔리고 있었다.

물론 그 가격으로도 팔리지 않고 있었으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월세가 생각보다 저렴하게 나오니 집은 전세로 시작해 돈을 모아서 사는 것이라 생각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집을 재산의 개념보다는 주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월세가 크게 오르는 거 아닙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법적으로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올릴 수 없게 했어요. 그리고 위에서 분양을 할 수 없도록 아주 못을 박은 모양입니다. 그 갤럭시 그룹의 강 회장님께서 전국에 임대 아파트를 500만 채를 건설하신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누가 비싼 돈 들여서 아파트 삽니까! 분양 시장은 망했어요, 망했어! 돈 있으시면 아파트보다 상가 쪽으로 눈을 돌려 보세요.”

상가는커녕 빚 갚기도 힘든 사람에게 투자란 멀고 먼 이야기였다.

“그럼 이사 갈 때는 어떻게 한답니까?”

“이사 갈 때는 다른 지역의 임대 아파트로 입주 우선권이 나올 겁니다. 뭐 집이 없으면 별수 없지만 매년 수십만 채씩 전국에 지어지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런 임대 아파트뿐만 아니라 지금 갤럭시 그룹에서 시장에 나온 아파트나 주택들 구입해서 임대로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집값 오를 일은 없겠네요.”

원래대로라면 IMF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다는 것을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려 10배가 넘게 아파트 가격이 뛰게 되니 돈이 있다면 지금 사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을 안 강민이 미리 전국에 500만 채의 임대 아파트들을 짓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역사가 바뀌었다. 집 짓는다고 전국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버리기 시작하니 아파트 가격이 오를 일은 사실상 막혀 버렸다.

비싼 가격으로 아파트를 살 수요자들이 저렴한 임대 아파트 쪽으로 돌아서 버리게 되면 그 가격을 받쳐 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봐, 김 씨! 거기 좀 신경 써서 마감해!”

“예? 아! 예!”

한 동료의 성화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 씨는 이내 그 성화의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나 여기 입주 신청했다고. 그렇게 설렁설렁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냔 말이야!”

“아! 강 씨 여기 입주 신청했어?”

“자네는 안 했나? 나 우리 집 회사에 처분하고 입주 우선권 받았거든. 월세도 조금 더 저렴하고 시세보다 더 좋게 팔았지. 대신에 50년 입주권 받기도 했고 말이야. 뭐 내가 그리 오래 살지는 모르겠다만 튼튼하게 지어야 오래 살지.”

“허허! 그렇구만. 그런데 회사에 집을 팔 수도 있나?”

“아직도 몰랐어? 참! 그렇게 깜깜해서 어디다 써먹나!”

김 씨는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이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자신의 빚이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혹시 대출 낀 아파트도 회사에 팔 수 있나?”

“대출 낀 아파트? 아마 될걸. 사무실에 한번 이야기해 봐. 요즘처럼 이자 막 올라갈 때는 빚을 빨리 없애야 하는 법이야.”

“그렇지. 빚 그거 무섭더만.”

일하던 일부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집에 붙었던 붉은 압류 딱지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신용 불량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 신용 불량자가 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용 불량자가 되면 통장도 사용할 수 없었고 통장을 사용하지 못하면 직업을 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문제가 되고 하면서 얼마 전부턴 신용 불량이어도 통장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기업들도 신용 불량자들을 고용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물론 그 이유에는 강민의 지시가 가장 컸다.

“경제를 살리려면 경제에 돈이 돌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결국 일자리를 통해 구성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말이지요.”

IMF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강민은 돈을 시장에 미친 듯이 풀어 대고 있었다.

자신의 사재까지 동원해서 양질의 일자리든 질이 나쁜 일자리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혼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런 강민의 요구에 따라 정부에서도 각종 세재 해택을 통해 지원을 했다.

IMF를 통해 긴축을 요구받고 있었으니 직접 돈을 풀 수는 없어서 우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산은 점점 커져만 갈 정도로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화수분 같기만 한 재산이라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정말 원 없이 돈을 써 보는구만.”

강민은 어차피 자신이 직접 번 돈도 아니지만 하루에 수천억씩 써 버리고 있는 상황에 웃음을 지었다.

그런 강민의 웃음에 임원들은 질린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민은 더욱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좀 더 돈 쓸 구석을 만들어 보자고.”

“회장님! 예산 낭비가 너무 과도한 듯합니다.”

임원들이 최근 들어 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레이크 고장 난 듯한 강민을 막는 일이었다.

자기 재산을 사용하는데 막기는 그렇지만 강민은 갤럭시 그룹의 자본도 한국에 쏟아붓고 있었다.

아직은 그렇게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일 그룹에서 투자한 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갤럭시 그룹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강민의 거침없는 투자를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 임원들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자금 상황이 간당간당할 때쯤 강민이 수조 원 대의 이득을 남기는 대형 호재를 찾아내어 던져 주기에 버티고 있는 갤럭시 그룹이었다.

“IBM 주식들 처분해서 자금 만들고 투자자들 배당해서 마음 좀 달래. 조금만 더 참으면 엄청난 시세 차익 얻을 수 있다고 하란 말이야. 그리고 조선 산업 쪽에 투자를 더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준비 좀 해 두고!”

“회장님!”

그동안 돈을 쓰기 보다는 돈을 모으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기간이 무려 2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부터 지금 이때를 위해 돈을 모아 왔었으니 강민은 정말이지 원 없이 돈을 쓰는 것이었다.

강민의 대부분의 재산을 바탕으로 투자 기업을 한국에 만들고 그 투자 기업들은 갤럭시 그룹과는 별도로 돈을 써 재끼고 있었다.

물론 갤럭시 그룹에서 강민의 개인 투자 기업을 관리해 주고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로 이름 올렸던 강민이 그 때문에 세계 부호 순위 10위권 밖으로 주저앉을 정도로 강민의 사치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렇게 풀린 자금들은 경직되다 못해 마비가 되어 가고 있던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안정화되어 가는 국내 경기에 해외로 빠져나갔던 투자 자금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처는 분명 깊고 깊어서 아직 채 낫지 않았지만 아물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깊고 깊은 터널이었지만 한국인들은 분명 저력이 있었다.

강민도 자신이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의 저력으로 위기를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정치인들의 공도 아니었고 돈 많은 재벌 회장님들의 능력도 아니었다.

무한한 국민들의 희생으로 되살려 낸 것이었다.

‘난 그냥 그 부작용을 줄이고 싶었던 거지.’

강민은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며 대한민국의 망국병 중에 하나인 부동산 시장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면서 사라지게 되는 시장이 또 한편으로 너무나도 컸지만 전체의 이득이 더 크면 일부의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조금은 잔인한 판단을 내리는 강민이었다.

박천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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