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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MMORPG의 조상·자유도의 상징 '울티마온라인'

수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그 두 번째 시간은 MMORPG의 조상격인 '울티마온라인'가 주제입니다. 올해 서비스 18주년을 맞이한 '울티마온라인'은 오랜 서비스 기간 만큼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울티마온라인'을 서비스 중인 브로드소드온라인게임즈는 최근 '울티마온라인'을 스팀 그린라이트에 등록하는 등 부활을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18년의 긴 역사 동안 '울티마온라인'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을 지금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게.이.머] MMORPG의 조상·자유도의 상징 '울티마온라인'

◆그런데 '울티마온라인'이 뭐야?

'울티마온라인'은 리처드 개리엇이 제작한 RPG로 서양식 CRPG(Computer Roll Playing Game)의 클래식, RPG의 전설이자 교과서로 불리는 게임 '울티마' 시리즈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Ultima'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최후의, 마지막의' 라는 뜻입니다. 최후의 게임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후속편이 9편까지 나오기도 했죠.

'울티마온라인'은 리처드 개리엇이 설립한 오리진에서 199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국내에서 '바람의나라'가 론칭된 시기이기도 해, '최초의 상용화 MMORPG'가 무엇이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RPG란 개념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고 최대 500명 동시접속까지도 지원했던 게임이 이미 있는 터라, 둘 다 최초의 상용화 MMORPG라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MMORPG라는 개념을 만든 게임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MMORPG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 리처드 개리엇이기도 합니다.

[게.이.머] MMORPG의 조상·자유도의 상징 '울티마온라인'

'울티마'는 현재 RPG들이 기초로 삼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처음으로 시도했기에 이후 출시된 RPG 장르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JRPG의 바이블과도 같은 '드래곤퀘스트'의 호리이 유지도 리처드 개리엇을 만난 자리에서 "'드래곤퀘스트'도 '울티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세계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RPG로 이름이 높으며 개발자인 리처드 개리엇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울티마' 시리즈로 얻은 수익과 엔씨소프트로부터의 투자금으로 북극 여행을 하거나 우주에 다녀오기도 해 '우주 먹튀'로 불리기도 했지요.

'울티마'는 리처드 개리엇이 고등학교 시절 8비트 '애플2'의 베이직을 이용해 프로그래밍 연습용으로 만들던 'D&D 시리즈'가 그 시작입니다. 이후 이것을 개량해 '아칼라베스'(Akalabeth)라는 게임을 만들고 이 게임을 수작업으로 만든 메뉴얼과 지도를 동봉, 패키지화해서 판매하던 것이 '울티마'의 시작입니다.

아킬라베스 플레이 화면
아킬라베스 플레이 화면

5편까지는 리처드 개리엇 자신이 직접 코딩해 8비트 '애플2' 컴퓨터로 개발됐습니다. 훗날 이 5편은 IBM PC 도스 버전으로 이식되기도 했습니다.

6편은 16비트 도스용 게임으로 개발됐는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256색 그래픽에 마우스를 사용한 게임으로 심리스 오픈월드를 구현해냈습니다. 이 때부터 '울티마'와 개발사인 오리진은 초 고사양 게임으로 악명을 떨치게 됩니다. '울티마'가 출시되면 "컴퓨터를 바꿀 때가 됐다"고 말하는 게 주요 게임 매체들의 단골 멘트이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런 고사양 악명은 이후로도 계속돼, 울티마 9편의 경우 최초의 3D카드 전용게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3개 서버 운영되던 국내 서비스 종료의 전말

'울티마온라인'의 한국 발매는 1998년 EA가 EA코리아로 국내에 진출하면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The Second Age' 확장팩부터 한국에 정식 출시된 '울티마온라인'이지만 정식 한국 샤드(서버)가 생기기 전에도 상당수 이용자들이 해외구매를 통해 게임을 즐겨 왔습니다.

EA코리아는 '울티마온라인'의 수요가 많지 않다고 판단, 북미 패키지를 직수입해서 판매했습니다. 당시 가격은 7만원으로 당시 기준으로도 꽤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본 EA코리아는 한국 샤드도 열고, 패키지도 현지화해 3만5000원으로 가격을 낮춰 정식 발매했습니다.

아리랑 샤드 개발팀 앰블럼
아리랑 샤드 개발팀 앰블럼

이전까지 지원하지 않던 한글 폰트도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등 이래저래 신경을 쓰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섰습니다. 당시 하이텔 본사에서 EA코리아의 후원으로 고전게임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울티마온라인' 유명 이용자들의 '울티마온라인 입문 강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아리랑'(Arirang)이라는 이름의 한국 샤드가 탄생해 상당수의 이용자가 '울티마'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리랑 샤드가 열리고 나서는 개발자인 리처드 개리엇이 한국에 방문해 이용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제2의 한국 샤드인 '발해'(Balhae)가 오픈하는 등 꽤 잘 나가게 됩니다. 다만 그 뒤에 추가된 전투 샤드인 '백두'(Baekdu) 샤드는 조용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백두 샤드는 EA코리아의 무리한 PC방 정책으로 PC방에서 미리 게임 내 재화를 선점한 이용자들의 경제 독점 등의 문제가 심화돼 서버를 폐쇄하기에 이릅니다.

발해 샤드 개발팀 앰블럼
발해 샤드 개발팀 앰블럼

오리진의 모토였던 '어떤 샤드도 닫지 않는다'는 말이 백두 샤드로 인해 깨진 것이죠. '울티마온라인'의 서비스 중 유일하게 닫힌 샤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EA는 EA코리아가 밀어붙이며 독단적으로 추진한 샤드이지 EA의 공식 샤드가 아니라며 공식적으로는 어떠한 샤드도 닫힌 적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EA코리아도 백두 샤드의 실패 이후 한국 샤드에 대한 투자를 전면 철회했습니다. 공지 없이 서비스가 중단 돼 버렸기에 이용자들은 갑작스레 홈페이지가 열리질 않고, GM을 불러도 호출이 되지 않는 현상에 의아해 하다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서버가 닫혔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큰 자유도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로드 브리티쉬' 살해 사건

'울티마온라인'의 특징으로는 뛰어난 자유도를 뽑을 수 있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플레이 방식이 울티마의 중요한 특징이지요.

또한 당시만 해도 우월한 퀄리티의 아바타를 통한 개성표현,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장점도 많았으나 반대로 '레벨 차이, 혹은 장비 차이로 인한 타 이용자보다 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해 국내 이용자들의 이탈율이 높기도 했습니다.

레벨업 시스템이 아닌 스킬 마스터 시스템으로 인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 강해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GM(그랜드 마스터, 기술을 끝까지 익힌 것을 표현하는 단어)을 달성해도 고 레벨 몬스터의 손쉬운 사냥 등은 힘들었던 것이죠. 표면적으로는 MMORPG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샌드박스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높은 자유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게임 내 가장 중요한 NPC인 '로드 브리티쉬'를 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전 시리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NPC마저 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울티마의 자유도를 상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드 브리티쉬'의 컨셉은 울티마의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 본인입니다. 리처드 개리엇도 영국 출신이며, '로드 브리티쉬'의 외모 또한 리처드 개리엇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개리엇을 부를 때 '로드 브리티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로드 브리티쉬'라는 캐릭터 이름 자체가 리처드 개리엇의 어릴 때 별명에 그가 TRPG 플레이 시 사용하던 닉네임을 합친 이름이니 본인의 아바타라고 봐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로드 브리티쉬 살해 현장
로드 브리티쉬 살해 현장

원 개발자이자 개발사 대표인 그를 죽이기 위해 많은 시도가 이뤄졌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타테스트 당시 '레인즈'라는 이용자가 '파이어필드' 마법의 버그를 이용해 '로드 브리티쉬'에게 PK 성향을 강제로 적용시켰고 이를 인식한 경비병이 '로드 브리티쉬'를 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버그플레이였고, 당시 자신의 캐릭터가 버그 악용으로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리차드 개리엇은 엄청난 숫자의 데몬을 소환해 주위에 있던 베타테스터를 모조리 몰살시켰습니다. 이후 진정을 찾은 리차드 개리엇은 데몬 소환이 원래 예정된 이벤트였으며 해당 버그를 악용한 이용자도 영구 추방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데몬이 계속 지키고 있어 시체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데몬이 계속 지키고 있어 시체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후 반복된 악랄한 PK 행위 신고가 누적돼 해당 이용자는 결국 영구 블럭 처분을 받게 됐습니다.

'브리티쉬 살해'에 관한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로는 '울티마온라인' 론칭 초기, 한 이용자가 '포이즈닝'(독바르기) 스킬을 사용한 음식을 '로드 브리티쉬'에게 줬고, 브리티쉬는 이것을 먹고 죽은 사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 개리엇은 두 번째 죽음이라 익숙해졌는지 이 플레이를 '창의적이다'라고 칭찬하며 인정해줬습니다.

또 한국에 '아리랑' 샤드가 오픈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리랑 샤드에 접속해 이용자들과 소통하다 우발적으로 수백 명의 이용자에게 둘러 쌓여 어떤 기술이나 버그 사용 없이 그야말로 두들겨 맞아서 죽기도 했습니다.

이후 '울티마온라인'에서 '로드 브리티쉬'는 무적인 상태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울티마온라인을 영원히 헤엄치는 돌고래 한 마리

'울티마온라인'의 바다에 출몰하는 돌고래 중 특별히 이름이 지어진 돌고래가 한 마리 있습니다. 'Sir Death'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돌고래는 사실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이용자를 추모하기 위해 GM이 직접 만든 NPC입니다.

에피소드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울티마온라인'의 '나이트 오브 라디언스' 길드는 레이크 슈페리어 서버에서 활동하는 일종의 친목 길드였습니다.

어느 날 매일 같이 접속해 길드원들과 함께 즐겁게 게임하던 열성 멤버 'Sir Death'가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 동안 접속이 없어 이를 의아하게 여긴 길드원이 그의 오프라인 연락처를 수소문 해 그의 집으로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길드원들은 전화 통화를 통해 'Sir Death'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길드원들은 교통사고로 죽은 길드원을 추모하기 위한 장례식을 게임 안에서 열어주기로 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것이 온라인 게임, 아니 네트워크를 통한 사상 첫 장례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길드원들은 게임 내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Sir Death'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의 명복을 빌어달라고 청했고, 이 소식은 금세 전 서버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장례식 당일, 수 많은 사람이 모여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생전 좋아하는 바닷가 언덕에는 'Sir Death' 캐릭터의 이름을 딴 개인 상점이 묘비 대신 자리했습니다.

추모하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GM이 나타나 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사람들은 GM에게 여러가지 말을 건넸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Sir Death' 개인 상점 뒤로 이동했습니다.

의아해하는 이용자들을 뒤로한 GM은 상점이 위치한 언덕 뒤의 바다에 어떤 주문을 시전했습니다. 주문이 끝나자 한 돌고래가 바다 위에 떠있었습니다. 그 돌고래의 이름은 'Sir Death'. GM은 죽은 이용자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NPC 돌고래를 소환한 것입니다.

이 돌고래는 서버가 닫힐 때까지 영원히 바다를 헤엄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용자들은 바다를 여행하다가 이 돌고래를 만나면 큰 행운이 찾아올 징조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울티마의 바다 위에서 우연히 돌고래를 만난다면 이름을 꼭 확인해 보자
울티마의 바다 위에서 우연히 돌고래를 만난다면 이름을 꼭 확인해 보자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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