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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간다] 금연법 그 이후…PC방 알바들의 교묘한 '접선'

'현장르뽀, 기자가간다'가 신설됐습니다. 이슈가 있는 현장이나 특이한 업무를 직접 해보고 그 감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그 첫 시작으로 올해초 금연법 시행 이후 달라진 PC방 분위기를 살펴보고자 직접 서울 인근 PC방들을 둘러봤습니다. 생존을 위한 PC방 알바들의 묘한 연합전선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편집자주>

◆PC방 이제는 달라졌나

PC방을 출입한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30분당 1500원씩 내며(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때가 엇그제 같다. 매캐한 담배 연기를 온 몸으로 받아냈던 기억들. 지금 생각해보면 담배 연기보다도 친구의 본진을 파괴하기 위해 수많은 마린과 탱크들을 뽑는데 더 열중했던 것 같다. 이미 담배 연기는 으레 PC방의 상징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뒤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같은 고정관념은 180도 뒤바뀐다. PC방내 담배흡연을 전면 금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이른바 금연법이 1월 1일 시행됐기 때문. 지난해 계도기간을 거쳐 올해 정식 시행된 이 법은 지정된 흡연실 이외 좌석에서 흡연이 적발될 경우 해당 손님은 과태료 10만원, PC방 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법이다.

금연법 시행 2주째. PC방은 비흡연자들도 간접 흡연의 우려가 전혀 없는 청정 공간으로 바뀌었을까.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요 며칠 동안 서울내 PC방들을 찾아 다녔다. 업계 관계자와의 미팅이 끝난 이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PC방을 방문했다. 데스크의 눈도 피하고 게임도 몰래 할 수 있어 좋았다. 어렸을 적 추억도 새록새록 돋아났다.

[기자가간다] 금연법 그 이후…PC방 알바들의 교묘한 '접선'

◆종이컵은 여전했다

지금껏 PC방을 들어서면 콧구멍을 들쑤시던 매캐한 담배의 향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향기는 여전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동안 방문한 PC방들은 모두 흡연실 혹은 흡연부스를 설치하긴 했다. 그런데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이 반, 자리에 앉아 종이컵을 재떨이삼아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반이었다. 즉 달라진게 없다는 소리다. 특히 모 PC방에서는 흡연손님들이 왜 단속에 걸리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기도 했다. PC방 알바와 손님, 인근 PC방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늦은 오후, 그날도 모 PC방을 들렀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어린티가 나는 알바생에게 '종이컵 지원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종이컵 안드린다. 가급적 저 옆에 보이시는 흡연부스에서 피우셔야 한다. 걸리면 벌금 10만원이다'라는 기계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PC방 사장에게 교육을 단단히 받은 모양이었다. 실제 앞을 보니 좁은 흡연부스에서는 두 손님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알바생의 떨리는 목소리와 달리 PC방은 너구리 소굴이었다. 도처에 종이컵을 재떨이삼아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이 적어도 열명은 넘어보였다. 그나마 예전에는 흡연실·금연실 구분이라도 있었지만 그런 구분이 사라진 지금에서는 마치 지뢰처럼 여기저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주의사항을 읊조리던 알바생은 이를 제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득 얼마전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흡연 손님을 제지하다 주먹으로 한대 얻어맞은 알바생이 그 손님과 엉켜 싸우다 둘다 입건됐다는 내용이었다. 까짓거 10만원 내고 만다는 손님의 호기가 부른 참극이었다. 자리에 앉아 그날 못한 기사 마감부터 일단 하기로 했다. 바로 뒷자리에는 함께 온듯한 일행 3명이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금연법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기자가간다] 금연법 그 이후…PC방 알바들의 교묘한 '접선'

◆그들이 단속을 피하는 방법

출입한지 한 시간쯤 됐을까. 아까 그 알바생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뭔가를 속삭이는 듯 했다. 이윽고 뒷자리에 있던 흡연 3인방에게 다가와서야 알바생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명확해졌다.

"단속하는 분들이 근처에 와 있다고 합니다. 담배들 꺼주시고요. 흔적들도 지워주세요. 걸리면 10만원입니다."

앵무새처럼 저 말만 마친 알바생은 다시금 카운터로 돌아갔고, 뒷자리 3인방은 약속이라도 한듯 서둘러 담배를 비벼껐다. 그들은 담배가 수북히 쌓인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다시 나올때는 손까지 비누로 씻었는지 싱그러운 향기까지 났다.

PC방들이 필수 품목으로 뿌리는 방향제를 구비해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카운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PC방 전좌석에 보낸 듯 했다. 곧 금연 단속이 올 수 있으니 흡연 흔적을 지울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었다. 방금전 일일히 돌아다니며 확인까지 했건만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PC방 전체가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단속이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시각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로부터 십여분 후, 또다시 카운터에서 메시지가 왔다. '단속이 왔다'는 짧고 간결한 내용이었다. 앞서 PC방 알바가 예고한대로 정말 단속이 정말 뜬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니 파란색 옷과 모자를 쓴 아저씨 두명이 근엄한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PC방 입구서부터 끝자리까지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공기는 묵직했다.

아무런 건수를 올리지 못한 이들은 곧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이내 PC방에서 사라졌다. 단속이 진행된 시간은 어림잡아 약 1여분. 말그대로 '스윽' 왔다 '스윽'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화장실도 둘러보고, 쓰레기통 뚜껑도 열어보는 수고를 더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모를 일이다. 단속하는 아저씨들이 다 알면서도 그냥 눈감아주는 관행이 이미 팽배해진 것일수도 있었다.

못다한 기사를 마감하면서도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 알바는 단속이 뜬다는 첩보를 어떻게 사전에 알았을까. 분명 인근 PC방끼리 모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모양새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알바생과 대화해보려 했으나 그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벌써 교대 타임이 왔는지 그 알바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 카운터에는 PC방 업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계산을 하며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니 "그게 무슨소리냐"는 앙칼진 반문이 돌아왔다. 기세가 너무 등등해 오금이 저릴 뻔 했다.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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