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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타임머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기, '닌텐도DS'

데일리게임이 임진년을 맞아 게임 산업 초기의 성장 동력원이 된 콘솔 게임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으로 알려진 스페이스워로 부터 50여년이 지난 2012년 오늘, 콘솔 게임 시장에서 어떠한 게임기가 등장했으며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정리했습니다.<편집자 주>

◆1분에 30대가 넘게 팔린 휴대용 콘솔 게임기

[콘솔 타임머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기, '닌텐도DS'

◇한국에서는 '닌텐도'로 불리는 '닌텐도 DS'


전세계 시장에서 1분에 30대, 미국에서만 1분에 17대씩 팔린 콘솔 게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주인공은 한국 게이머에게도 친숙한 '닌텐도 DS' 입니다.

'닌텐도DS'는 2012년 9월 현재 전세계 판매량 1억 5254만대를 판매하는 엄청난 판매고를 자랑하고 있으며, 현재도 중남미 지역 등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엄청난 기기입니다. '닌텐도 DS'는 지난 2009년 상반기 판매량 1억대를 돌파하고, 3년 뒤 5000 만대를 추가로 판매하는 등, 첫 발매 이후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휴대용 게임기 입니다.

놀라운 기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소프트웨어 판매량인데요. '닌텐도DS'가 세상에 내놓은 게임들은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적극 활용한 새로운 게임들이 대거 출시되었고, 퍼스트 파티 게임 뿐만 아니라 서드 파티 게임들도 출시만 하면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즉, '닌텐도DS'라는 플래폼을 선택하면 성공한 게임의 기준이었던 판매량 100만장(밀리언셀러)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 때문에, 많은 개발사들이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고, 비교적 짧은 출시 기간 동안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게 됩니다.

[콘솔 타임머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기, '닌텐도DS'

◇스퀘어에닉스도 '닌텐도 DS' 열풍을 피할 수 없었다. 사진은 '닌텐도 DS'로 발매된 '파이널판타지3' 리메이크 버전


이런 제작사들 중에는 한때 닌텐도 진영 이탈을 선언했던 스퀘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슈퍼패미콤 이후 최고의 플래폼을 찾기 위해 닌텐도를 이탈, 소니 진영에 큰 힘이 되어줬던 스퀘어의 돌연한 닌텐도 진영 참가는 당시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콘솔 게임기 기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드 파티들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멀티 플레폼 정책이 활발해 진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스퀘어는 에닉스와 합병으로 단기간의 수익과 성과를 필요로 했었고, 대형 RPG 게임 시리즈인 '드래곤퀘스트'와 '파이널판타지'의 신작과 리메이크 게임들을 '닌텐도 DS'로 출시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쟁기종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이 제작의 어려움으로 소프트웨어 라인업에 고민하고 있을 때, '닌텐도 DS'는 하위 기종 호환, 서드파티의 활약으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평정합니다.

◆닌텐도 DS, 닌텐도 개발 철학의 집대성

'닌텐도 DS'는 많은 게이머들과 관계자들로부터 닌텐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터치 스크린의 적극적인 사용과 두 개의 디스플레이(닌텐도 초기 제품인 '게임와치'에서 시도했던 콘셉트), 기기 성능은 낮지만 몰입도 높은 게임과 캐릭터 게임의 적극적인 개발, 튼튼한 내구성 등 지금까지 콘솔 타임머신에서 다뤘던 닌텐도 제품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제품이 '닌텐도 DS'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콘솔 타임머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기, '닌텐도DS'

◇닌텐도는 스마트폰과의 경쟁을 위해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DSi'를 발매하기도 했다


'닌텐도 DS'는 당시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독자 노선을 걷는 단독 플래폼으로 개발되었습니다. 물론 '닌텐도 DS'에서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게임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지요. 이런 콘셉트는 당시 닌텐도의 신임 사장으로 취임한 이와타 사토루 대표의 게임 철학인 '모두를 위한 게임'을 적극적으로 반영돼 제작되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게임기 라는 추상적인 콘셉트 만으로는 전세계 게이머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 대표 취임 전부터 '게임의 신'이라 불리우며 실질적으로 닌텐도를 지탱했던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결합된 이와타 사토루 대표의 게임 철학은 그야말로 호랑이의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습니다.'닌텐도 DS'는 앞서 설명한 듀얼 스크린과 터치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의 대표작 '젤다의 전설'과 만나 게임의 끝을 알수 없는 가능성을 게이머와 관계자들에게 제시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닌텐도 DS'의 인기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닌텐도 DS'가 한국에 정식 발매된 시기에 유행했던 건강한 뇌연령 트레이닝 신드롬은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의 출시와 맞물려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 냈고, 콘솔 게임 불모지인 한국에서는 기록적인 판매량인 200만대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인기는 2009년도 이명박 대통령이 닌텐도 DS를 업급하며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한국에서는 왜 못만드나"는 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요. 덕분에 한국에서는 한때 죽어가던 콘솔 게임 업체들이 힘을 얻는 계기가 돼기도 했었습니다.

◆화려한 기록 뒤에 감쳐준 그림자, 이상한 판매 전략

'닌텐도 DS'가 게임을 보다 대중적으로 만들었고 한단계 높은 수준의 게임성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듯 닌텐도는 '닌텐도 DS' 가격 정책과 판매 전략으로 한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콘솔 타임머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기, '닌텐도DS'

◇유명 연예인이 등장한 닌텐도 DS 광고. 닌텐도는 게임보다는 게이머에 초점을 맞춘 광고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판매 가격입니다. 경쟁기종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과 비교했을때 절반 이하 수준으로 판매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기 성능으로만 따지고 본다면 매우 낮은 수준의 게임기 였던 '닌텐도 DS'. '닌텐도 DS'는 흔히 게임기가 오래 판매될 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소비자 가격이 1만 5000엔에서 1만 6800엔으로 오르는 이상한 정책을 시작합니다. 물론 닌텐도 입장에서는 잘나가는 히트 상품을 제 값을 받고 팔고 싶겠지만 실직적으로 '닌텐도 DS'는 1만 5000엔이라는 가격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닌텐도 DS'의 생산 위탁을 받은 샤프와 히타치의 폭로로 닌텐도는 '악덕기업'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닌텐도 DS'의 생산 공장을 위탁 경영했던 샤프와 히타치는 3개월 마다 부품 견적을 다시 작성해 생산 단가 낮추었지만, 닌텐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가격 인하 대신 이상을 선택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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