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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타임머신] 아타리의 성공, 그리고 쇼크

데일리게임이 임진년을 맞아 게임 산업 초기의 성장동력원이 된 콘솔 게임기의 역사를 되집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으로 알려진 스페이스워로 부터 50여년이 지난 2012년 오늘, 콘솔 게임 시장에서 어떠한 게임기가 등장했으며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정리했습니다.<편집자 주>

◆비디오게임의 아버지가 될뻔 했던 랄프 베어, 그리고 '두 사람을 위한 테니스'

가정용 게임기 분류 중 2세대로 넘어가기 전에 마그나복스와 아타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타리VCS(이후 아타리2600으로 개명) 전에 출시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에도 퐁과 같은 게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테니스'입니다.

2세대로 분류되는 카트리지 분리형 콘솔 게임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1970년대. 놀란 부쉬넬의 성공은 퐁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놀란 부쉬넬을 콘솔 게임기 아타리2600과 퐁을 만든 업적을 기려 '게임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선사하기도 했으니까요.

[콘솔타임머신] 아타리의 성공, 그리고 쇼크
◇랄프 베어가 '테니스'를 시연하는 모습


발명가로 유명했던 랄프베어는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를 아타리보다 먼저 출시하면서 '테니스'라는 게임을 만들어 냅니다. 이 당시 아직 아타리라는 게임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부쉬넬을 제외한 그 누구도 콘솔 게임기를 TV와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콘솔 게임의 아버지로 랄프 베어를 꼽고 있으며 세계 최초의 콘솔 게임기로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를 꼽고 있습니다. 만일 '퐁'과 같은 게임성을 가진 '테니스'가 먼저 성공을 거두었다면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역시 랄프 베어의 차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테니스'와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는 왜 성공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마그나복스의 판매 정책 때문입니다. 당시 가전용 가전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던 마그나복스는 자신들이 만든 전자 오락기(게임기)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해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은데다, 마그나복스 대리점에서만 '오디세이'를 판매함으로써 "오디세이를 하려면 마그나복스 텔레비전을 사야한다"라는 오해를 사고 말았습니다.

이런 판매 정책은 산업 후발주지인 아타리가 가정용 '퐁'을 판매할 때 흑백이나 컬러, 어떤 텔레비전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표기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아타리2600 모습을 드러내다

[콘솔타임머신] 아타리의 성공, 그리고 쇼크
◇비디오 게임산업의 시작을 알린 아타리2600


1977년 10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주목시킨 '아타리2600'이 세상에 첫 등장했습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에서 사용하던 롬카트리지(Rom Catridge)방식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채택한 아타리는 원래 '아타리VCS'(Atari Video Computer System)으로 불렸다가 '아타리2600'으로 상품명을 변경하였습니다.

'아타리2600'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확신을 가졌던 당시 놀란 부쉬넬이 아케이드 게임 퐁, 팩맨 등을 이식하여 판매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아타리2600'은 출시 첫 해 25만대, 다음해인 1978년 55만대를 판매합니다.

[콘솔타임머신] 아타리의 성공, 그리고 쇼크
◇아타리에게 비수를 꽂은 액티비전


또한 당시 가공산업에서 전자-IT산업으로 전환되던 시점과 맞물려 많은 공학도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게임을 출시하면서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아타리2600'은 전용 게임의 지원에 힘입어 1979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최고의 인기 품목에 선정되면서 눈부신 행보를 이어가게됩니다. 또한 현재도 많은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슈팅 게임 장르인 '스페이스인베이더'(Space Invaders)를 1980년 1월에 출시하며 2백만대의 게임기를 판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2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아타리는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도 시도했습니다. 아타리는 자사의 게임 '소드퀘스트'(Sword Quest)를 이용한 대회를 진행하고, 게임내에 등장하는 왕관, 검 등을 황금으로 제작해 상품으로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혼돈에 중심이 된 아타리

아타리의 성과를 목격한 많은 공학도들은 게임 산업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아타리는 '아타리2600'으로 큰 성과를 거두자 실리콘 밸리에 거대 연구소를 운영하며 전자제품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작합니다. 또 '아타리2700'의 개발 실패와 '아타리5200'의 저조한 성과는 아타리의 경영성과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타리2600'은 2011년 10월 '아타리플래시백3'란 이름 재출시됐다


아타리의 주요 프로그래머들은 당시 회사 정책에 불만을 품고 독립해 각자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는데요. 현재 FPS부문을 양반하고 있는 '메달오브아너' 시리즈를 만든 액티비전(Activision)도 이때 설립되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타리에서 빠져나온 프로그래머들이 재직 당시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연이어 만들어 내며 아타리를 재정적으로 압박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플래폼에 대한 소유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분쟁이 명확하지 않은 시절, 게임을 제공하던 중소업체들의 난립으로 아타리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미스틱(Mystique)이라는 회사에서 '아타리2600' 용 포르노 게임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면서 당시 학부모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고, 인디언 여성을 주제로한 '커스터의 복수'(Custer's Revenge)로 여성과 원주민 단체의 항의를 받게 됩니다.

또한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콜레코(Coleco)가 제작한 가정용 게임기 '콜레코 비전'(Coleco Vision)서 '아타리2600'의 패키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면서 아타리는 많은 회사 내-외에서 많은 압박을 받게 됩니다.

◆아타리의 몰락과 '아타리 쇼크'

1980년대 초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 였습니다. 플래폼에 대한 게임 소프트웨어 출시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 중소 게임업체들이 난립하고, 플래폼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명확하지 않아 '아타리2600' 용으로 출시된 게임을 타사의 게임 콘솔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콘솔타임머신] 아타리의 성공, 그리고 쇼크
◇콜리코비전은 아타리2600의 게임을 실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타리는 신규 기종 개발에 연이어 실패하며 재정적 위기에 몰리게 됐고, 일본에서 새로운 강자 닌텐도(任天堂, Nintendo)가 급 부상하면서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발매하는 게임들은 전과 같은 파급력이 사라졌고, 중소 개발사에서는 말도 안되는 품질의 게임을 시장에 마구 쏟아내는 상황인 1982년 아타리는 난국을 타개할 활로로 당시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E.T.'를 선택합니다.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은 'E.T.'를 게임으로 만들어 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를 시작하면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아타리는 'E.T.'의 라이선스를 소유한 워너에게 200억원 이상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게다가 라이선스 사용 계약이 채결된 것은 1982년 7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약 5개월 남긴 상태에서 게임 제작이 시작되었고(기획, 제작, 배송을 제외한 실 제작기간은 1달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머들에게 사상 최악의 게임으로 손꼽히는 'E.T.'가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게 됩니다.

◇아타리쇼크에 계기가 된 E.T. 게임 화면


당시 아타리는 'E.T.'의 성공을 낙관해 400만장을 출하하지만 실제로 판매된 양은 150만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도 절반이 넘는 80만장 가량이 반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아타리는 'E.T.'에 사용된 라이센스비와 시장의 혼돈, 재정적 압박과 더불어 신규 사업에 연이은 실패, 수준 낮은 게임의 난립으로 게이머들의 이탈이 가속화 되면서 비디오 게임시장의 혼돈이 더욱 가속화됩니다.

1982년 아타리로 시작된 비디오 게임 시장의 위기는 소매상과 개발사가 큰 타격을 입게 하였고, 개발사의 도산과 헐값에 처리되는 게임들이 시장에 노출되면서 정가의 붕괴, 20여종에 달하는 콘솔 게임기의 난립이 겹쳐 결국 게임 산업 최대의 사건인 '아타리 쇼크'가 터지게 됩니다.

'아타리 쇼크'의 결과로 미국의 통화 질서와 경제 체계가 붕괴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되었고 이는 곧 사회문제로 까지 대두 되었습니다. 유통을 맞고 있던 소매상들이 게임 관련 상품 판매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가전제품업체인 콜레코와 마그나복스의 게임 산업 철수, 당시 상장 업체였던 이매직(Imagic)을 비롯한 수많은 개발사가 파산하게되, 2세대 비디오 게임 시장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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