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ports

[아듀 리뷰] 공박 - 비인기 종목의 한계

국내 게임시장이 온라인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서버 접속 없이 게임 구동이 불가능한 온라인게임의 특성으로 인해 한번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은 다시 즐길 수 없다. 패키지 게임의 경우 데이터가 담긴 CD나 디스켓만 잘 보관하면 어린 시절 즐겼던 명작 게임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보고 플레이할 수 있지만 온라인게임은 해당 게임의 서비스가 재개되지 않는 이상 그럴 수 없다.

서버에서 내려진 게임의 경우 관련 자료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게임 관련 매체들도 신작 취재에만 열을 올릴 뿐 이미 지나간 게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이에 데일리게임은 '아듀 리뷰'라는 코너를 통해 수명이 다해 서비스가 종료되는 게임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려 한다. <편집자주>


◆첫 손님은 족구게임 '공박'

'아듀 리뷰'의 첫 초대 손님은 4월10일 문을 닫는 '공박'이다. '공박'은 레드덕이 개발하고 엔트리브소프트가 서비스하는 족구게임으로 2007년 8월 첫 비공개 테스트를 시작했고 2009년 3월9일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공박'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기 위해 게임에 접속했다. 전부터 '공박'이 잘 만든 게임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왔던 터여서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평소 스포츠게임을 즐겨하는 기자는 족구라는 생활 스포츠를 다룬 '공박'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임에 접속해 캐릭터를 만들고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일반적으로 튜토리얼이라고 하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쉽게 완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공박'의 튜토리얼은 여러번 반복해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없었다. 서브야 대충 누르면 문제 없지만 리시브와 토스 등은 위치 선정과 공을 차는 세기, 각도, 방향 등을 다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사용하는 키 자체는 많지 않지만 킥을 하기 전 자세를 잡는 일과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튜토리얼부터 어렵네

어렵게 어렵게 다른 과정을 끝내고 튜토리얼의 마지막인 연습게임에 돌입했다. AI 캐릭터들과 함께 3대3 게임을 치렀다. 기자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의 팀원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팀 실력 역시 너무나도 출중했다. 상대팀이 공격한 공을 도저히 받아낼 수 없었다. 기자쪽으로 공이 오기만 하면 실점이었다.

게임 실력이라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고 생각하는 기자였건만 이와 같은 자부심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리뷰만 아니라면 게임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옆에서 기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게임 센스가 없다"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튜토리얼이라고 하면 '센스'가 없는 사람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얼마전 '공박'과 관련한 기사에 '쉬운 조작과 완성도 높은 게임성을 인정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적이 있는데 쉬운 조작이라는 부분은 취소다. '공박'은 완성도가 높은 게임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조작이 쉬운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족구 고수들의 시합 완벽 구현

연습게임을 끝내고 일반 이용자들과 경기를 치렀다. 현재 '공박'에는 초보 이용자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 기자의 실력은 왕초보 수준이어서 같은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지만 서비스 종료 전에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몇 게임 치러 보니 왜 게이머들이 '공박'의 서비스 종료에 미련을 갖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자를 제외한 다섯 명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족구 내공이 깊은 아저씨들이 운동장에서 열띤 시합을 펼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너무도 강력한 돌려차기 공격이 성공되는 듯했으나 수비수가 멋진 리시브로 받아낸다. 먼 거리에서 올라온 쉽지 않은 토스를 공격수가 다시 상대 코트 구석으로 넘기며 랠리가 계속된다. 다시 공격권을 찾아온 팀은 완벽한 토스에 이은 각샷 공격으로 득점에 성공한다. 족구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려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과 캐릭터 모션도 수준급이었다. 새로 캐릭터를 만드느라 꾸미기 아이템이 전무한 기자의 캐릭터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화려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각종 필살기와 특수 능력을 발휘하며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신규 이용자 적응 어려운 구조

문제는 단 하나였다. 기자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 남들은 다 하는 플레이를 기자만 할 수 없었다. 사실상 2대3으로 진행된 싸움에서 분투하던 팀원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드러내 결국 기자가 속한 팀이 큰 점수차로 패했다. 3명이 팀을 이루는 게임에서 한 사람의 부진이 팀 승패와 직결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은 비단 기자 한명만은 아닐 것이다. '공박'의 서비스가 조기에 종료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높은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게임에 적응만 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판단되지만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스포츠게임에 비해 다소 길다. 선택의 폭이 다양한 요즘 게이머들은 인내심이 많지 않다. 게임에 접속해서 몇분 이내에 감이 오지 않으면 바로 클라이언트를 삭제하는 게이머들에게 익숙해지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권유가 먹힐 리 없다.

AI 캐릭터와 펼치는 연습게임 적응조차 어려운 마당에 오랜 기간 단련된 고수 게이머들과의 대결에서 돌아오는 건 큰 점수차 패배뿐이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10번 경기를 치르면 3-4번은 이겨야 흥미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공박'은 내공 깊은 게이머가 대부분이어서 신규 이용자가 1할의 승률도 올리기 어렵다. 이들의 선택은 뻔하다. 다른 게임을 찾아 떠나는 것.

◆비인기 종목의 한계 극복 못해

국내 온라인 스포츠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게임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인기 종목 게임들이 선전하고 있다. 야구와 축구, 농구, 골프 등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축구게임 '피파온라인2'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 저변이 넓어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박지성을 비롯한 해외 진출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동시접속자가 늘어날 정도다. 야구게임 양대산맥인 '마구마구'와 '슬러거'도 야구의 인기 부활에 힘입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장수 스포츠 게임인 엔트리브소프트 '팡야' 역시 박세리를 통해 LPGA 중계가 보편화된 덕에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족구는 어떤가. 족구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정도로 저변은 넓지만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가끔 족구대회를 중계하기는 하지만 족구를 즐기는 이들조차 족구 중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족구는 직접 할 때 의미를 갖지 남이 족구를 하는 모습에는 신경을 쓰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이다.

'공박'이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 것도 비인기 종목을 선택한 탓은 아니었을까. 아이스하키와 테니스 등 국내에서 인기가 높지 않은 종목을 선택한 게임들은 모두 실패했다. 애초에 수요가 없는 제품이라면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공급이 원활하게 진행될 리 없다. 개발사와 서비스사 관계자들은 족구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젠 안녕

지금까지 게임에 애착을 갖고 남아있는 '공박' 이용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공박'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지 오래다.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고 동시접속자도 많지 않다. 이렇다 할 매출이 나오지 않는 게임의 서비스를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계속 이어가야 할 의무는 없다.

'공박'에는 충성도 높은 이용자가 적지 않고 길드 단위의 활동도 나름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공박' 마니아들은 게임의 종료 소식에 울분을 토하더니 고별 대회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함께 있어 '공박'이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로울 것 같지는 않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Copyright ⓒ Dailygame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데일리랭킹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