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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화] 게임을 추억하며

[[img1 ]]1995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국내 최초로 탄생한 게임회사인 미리내 소프트웨어의 대표작품인 슈팅게임 '그날이오면' 시리즈의 마지막 편 '그날이 오면5' 패키지를 출시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한 유저로부터 게임을 구매했는데 패스워드북을 잃어버렸다며 게임디스켓은 있으니 패스워드북만 다시 받을 수 있느냐고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로 보아 중학생 정도 된 것 같았고, 필시 불법복제를 했는데 컬러인쇄로 된 패스워드북을 복사할 수 없어서 궁리 끝에 용기를 내서 회사로 일단 전화를 해본 것 같았다.

아직 어린 학생의 맹랑함에 당황스러운 한편 얼마나 우리 게임이 하고 싶었으면 전화까지 했을까 싶어서, 정말로 구매를 했는데 패스워드북만 잃어버린 것이라면 회사로 오면 새패키지를 주겠다고 했더니, 이 착한 학생이 지레 찔렸는지 "가면 혼낼 거죠?" 하는 것이었다.

그 순진한 물음에 미소가 떠오르며 새로 출시한 게임을 불법복제 한 것에 대한 서운함과 화가 나기보다는 우리게임을 꼭 하고 싶어하는 애정이 더욱 크고 고맙게 느껴져서, 절대 혼내지 않을 테니 회사로 꼭 찾아오라고 하니 홍대 앞에 있는 회사까지 물어물어 정말로 찾아온 것이었다.


큰 용기를 내서 찾아온 중학생에게 새 패키지와 이벤트상품에 밥도 사주고, 당시 흔치 않았던 PS1을 빔프로젝트의 대형화면에 연결하여 철권을 실행시켜주고 회사에서 장시간 놀게 해주고는 우리 게임을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운데 불법복제는 나쁜 짓이니 절대로 하지 말고 앞으로도 또 우리게임이 하고 싶은데 용돈이 부족해서 구매를 못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고는 돌려보냈다.

그 해 12월 지금 지스타의 전신인 제1회 대한민국 게임대전에 참가한 우리회사 부스에 그 학생이 방문을 하여, '그날이 오면5' 너무 재미있게 했고 너무 고마워서 지금도 미리내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복제 안하고 꼭 사서 기념품으로 소장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내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참으로 쑥스러우면서도 뭔지 모를 애틋한 감정과 게임을 개발하며 게임인으로의 자부심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불과 13~14년 전 그때는 기본급 45만원이 업계 최고월급일 정도로 배고픈 직업이었지만, 게임을 통해 유저들에게 나의 이상과 꿈을 전달하고 그를 통해 느껴지는 게임개발자들의 꿈을 공감하며 사랑해주는 유저들과 게임을 통해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깊은 애정과 신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개발자들에게도 항상 '게임개발자는 밥이 아닌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올 만큼 20대에 가졌던 '게임은 꿈을 공유하는 콘텐츠'라는 생각을 불혹인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일상을 동거하는 게임개발 과정에서 게임개발은 곧 유저들이 꿈꾸는 세계의 완성이라는 철학을 놓지 않아 왔다.

또한, 10여 년 사이 국내게임 시장이 온라인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으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게임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신속해졌다. 또한, 출시 때까지 부족한 부분을 유저들이 확인하고 지적하여 게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점은 온라인 플랫폼이 갖고 있는 특장점이고, 게임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필자가 3년 반 동안 개발한 새로운 MMORPG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이라는 파워풀한 매체가 갖는 영향력 중 부정적인 부분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직접 경험하고 가슴에 뭔지 모를 아린 상처와 함께 패키지게임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깊이 느끼고 있다.

아직 정식 출시도 되지 않은 게임에 대한 흠집내기식 험담과 부정적인 자극을 의도하는 무조건, 무차별적 비난, 유저들 상호간의 인격을 짓밟는 인신공격성 게시물이 자유게시판을 도배하듯 하는 상황을 보며, 게임오픈 당일에 우리개발자들에게 '그간 스트레스 속에서 고생 많았으니, 이제는 유저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보완과 업데이트 등 유저들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며, 여러분 손으로 만든 세계를 유저들과 함께 오랫동안 즐기며 게임을 통해 꿈을 이루고 공유하기 바란다'고 얘기한 내 스스로가 무색해졌다.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게시판부터 확인하는 나의 일상에, 벌써 한글 맞춤법까지 모두 익혀 제법 글을 읽는 6살짜리 아들이 '아빠 또 게임보고 있구나, 휴일인데 오늘도 회사가야 해? 제발 오늘은 쉬고 나랑 하루만 놀아줘'하고 매달리는 아이와 아내가 혹시 보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서둘러 방에서 내보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우리게임의 부족함에 대해 깊은 애정으로 따끔하게 충고하며 신뢰하고 성원하는 천만이 넘는 게임유저들이 한국게임산업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고, 그렇게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유저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한국게임이 단기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만큼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부작용에 대한 상처를 곱씹기보다 성원과 신뢰를 주는 한국 게임유저들께 최선을 다해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 우리와 유저들의 꿈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게임은 개발자와 유저들이 서로의 문화와 정서와 꿈을 공유하는 콘텐츠 이기에, 게임개발자의 꿈은 곧 유저들의 꿈이라는 믿음을 나는 죽는 날까지 간직할 것이다.

훗날 내 아들의 아들에게 '할아버지는 네가 꿈꾸는 세상을 게임으로 만들어서 어떤 꿈이든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너와 공유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게임은 그 꿈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꿈의 콘텐츠 이기에...

- 정철화 -
CJ인터넷 게임스튜디오
아니마개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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