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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본 한국 온라인 게임 10년사-②리니지

◆ 한국 온라인 게임의 비약(飛躍) ‘리니지’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들보를 꼽는다면 게임 업계에 속한 관계자들뿐 아니라 일반 게임 이용자들 모두 한 목소리로 ‘리니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리니지는 지난 10년간 한국 온라인 게임을 대표하는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지금도 인기나 인지도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게임으로 군림하고 있다.

리니지는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MMORPG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997년 베타 서비스로 테스트를 한 뒤 시작해 이듬해 9월 ‘에피소드1:말하는 섬’으로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 게이머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PC게임을 꼽으라면 블리자드에서 개발한 ‘디아블로’ 정도. 디아블로가 아니면 일본에서 개발한 비디오 게임들이 관심을 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홀로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니지는 디아블로와 같은 ‘훌륭한’ 그래픽을 선보이면서도 다수의 사람들과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다중접속 게임은 ‘바람의 나라’가 먼저 시장에 나왔지만 그래픽이 아쉬웠고 일반 게이머들에게 인지도가 부족했다. 그러나 리니지는 디아블로를 경험한 게이머들에게 한 순간에 경외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 ‘천재’ 송재경의 혼이 담긴 역작

리니지를 얘기하며 현 NC소프트의 대표인 김택진 사장과 송재경 XL게임즈 대표의 만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의 만남이 없었다면 리니지는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자’ 송재경은 김정주 넥슨 대표와 함께 ‘바람의 나라’를 상용화 서비스까지 이뤄놨지만 병역 문제가 걸려 회사를 갈아타야만 했다. 아이네트라는 새 회사에서 송재경 대표는 넥슨에서부터 꿈꿔왔던 리니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1997년 한국 경제를 바닥까지 무너뜨린 IMF 한파에 아이네트 역시 된서리를 맞았고 리니지 프로젝트는 중단 위기에 맞았다.

이때 김택진 대표가 송재경 사단 전부를 그대로 엔씨 소프트로 흡수했다. 당시 아이네트 대표로 있던 허진호 현 네오위즈인터넷 대표와의 인간적인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을 이어주는 연줄은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였다.

김택진 대표는 송재경 사단이 리니지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인터넷 기반의 첫 PC게임’(온라인 게임이란 용어도 정립돼 있지 않았다)인 리니지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첫 베타테스트 이후 불과 2년 만에 동시 접속자 수를 1만 명까지 늘리며 대박 신화를 만들어냈다.



◆ 리니지 위기와 도약

리니지가 10년이 넘도록 서비스하며 항상 승승장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의 대표 역할을 담당하며 PC방 사업주와 과금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부딪혔고 게임 내 각종 시스템을 해킹 당했다. 또한 ‘게임 중독’, ‘사행성 게임’ 등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리니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리니지 역사에서 2001년은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먼저 2월 리니지의 원작자 신일숙 씨가 엔씨 소프트를 상대로 ‘리니지 원작사용계약 위반행위에 대한 리니지 서비스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다. 엔씨 소프트가 승소하기는 했지만 이후 한동안 온라인 게임 업계에서는 저작권과 관련 적잖은 소송이 일었다.

5월에는 기란 마을을 업데이트하며 개경주장을 개장했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이를 통해 아덴(리니지 내 게임 머니)을 부풀렸고 곧 도박 논란이 일었다. 또 리니지 만이 가지고 있던 PK(Player Killing) 시스템이 악용화 돼 게이머들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리니지는 2002년 2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언론의 질타를 받은 뒤 이후 계정 사칭 사기, 아이템 현금 거래 및 작업장 실태 등이 보도되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리니지는 2003년 ‘리니지2’를 세상에 선보이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리니지와 같은 세계관으로 제작된 리니지2는 풀 3D 그래픽과 방대해진 게임 시스템으로 리니지와 함께 여전히 국내 온라인 게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 리니지로 투영된 사회상

리니지는 서비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터넷 상에서만 즐기는 단순한 게임 기능을 넘어서 사회 현상으로까지 나타났다.

리니지 서비스 초창기에는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 산업의 첨병 역할을 했다. 리니지를 즐기기 위해 PC방을 찾는 이용자들이 급증했고 전국적으로 3만 여개에 달하는 PC방이 형성됐다. 이후 리니지의 아류작들로 불리는 초기 MMORPG도 PC방 창업붐에 힘입어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또 리니지는 PK 시스템에서 기인한 혈맹 시스템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문화를 바꿨다. 혈맹을 조직한 이용자들은 그들만의 모임을 따로 가지며 온라인을 통해서 형성된 인맥을 오프라인까지 확대했다. 이것이 확장돼 좀 더 시일이 흐른 뒤에는 온라인 모임을 갖는 이용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게임 내외적으로 시위를 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등 집단행동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리니지의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만큼이나 부작용도 있었다. ‘리니지 폐인’으로 불리며 게임 중독에 살아가는 청소년이 대두되기도 했고 아이템 획득만을 이용해 청소년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작업장’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아이템의 현금 거래에 따른 각종 폭력 및 불법 현상들이 나타나며 지탄의 대상이 됐다.



◆ 리니지의 미래

엔씨 소프트는 리니지를 보며 ‘양면의 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리니지를 서비스한 지난 10년 동안 누적매출 1조 769억원에 4300만명의 누적 회원수가 말해주듯 리니지의 공헌도는 이루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리니지2가 서비스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엔씨 소프트는 신작으로 내놓은 무수한 게임들, 예를 들어 ‘길드워’, ‘시티 오브 히어로’나 캐주얼 게임 포털로 만든 ‘플레이 엔씨’ 등이 국내 게이머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미래 가치가 저평가되고도 했다. 게다가 2007년 초 ‘리니지3’ 개발을 위해 구성했던 개발조직이 무너지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기도 했다.

리니지의 후속작은 지난 3년간 100억여 원의 공을 들인 ‘아이온’이다. 리니지의 게임성을 그대로 이어 받아 ‘리니지3’로도 불리는 게임이다. 아이온의 타깃은 국내가 아닌 해외다. 이는 “해외 매출 50% 이상”이라는 김택진 대표의 말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리니지가 나가야 할 길은 정해졌다. 리니지는 아이온으로도 해외 서비스 이용이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리니지는 국내 서비스에 더욱 집중하고 게임과 캐릭터 사업 외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해 진정한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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